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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통일신라 왕의 정원 원지(園池) 정비사업으로 재조명되다

김영호 기자 | 기사입력 2023/06/08 [13:50]

[사설] 통일신라 왕의 정원 원지(園池) 정비사업으로 재조명되다

김영호 기자 | 입력 : 2023/06/08 [13:50]

[드림저널] 통일신라시대 왕의 정원인 원지(園池)가 최근 재조명을 받고 있다. 경주시가 신라왕경 14개 핵심유적복원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구황동 원지 유적 정비사업’을 본격 추진하기로 하면서 김석기 국회의원의 '신라왕경 복원 특별법'과 함께 관심을 받고 있다. 

  © 드림저널



대표적인 원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궁과 월지다. 신라 왕궁의 별궁터로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문헌 등에 소개되고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 ‘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며, 이 곳이 본래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의 ‘월지’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 되어 ‘안압지’라는 이름은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됐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경주시가 발굴부터 정비까지 사업비 84억 원이 투입해 2025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원지, 호안석축, 수로 등을 정비에 나선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은 경주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 부지로 선정돼 조사하던 중 석축과 담장, 우물 등이 드러나 통일 신라 시대의 원지(정원과 연못 혹은 정원 안에 있는 못)였음이 확인됐다.

 

원지는 남북 길이 46.3m, 동서 너비 26.1m로 동궁과 월지에 비하면 15분의 1크기이다. 중심부에 크고 작은 연못 2개의 인공 섬이 있고 그 주위에 입수로와 배수로, 건물지, 담장, 축대 등이 있다. 호안(湖岸, 강이나 바다의 기슭이나 둑 따위가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시설)의 석축으로 보아 연못을 만든 후 확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못은 6세기 중반에 만들어졌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이 분황사 출토 유물과 비슷해 연못이 만들어진 이후 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까지 존속했다고 전해진다.

  © 드림저널



구황동 원지는 동궁과 월지, 용강동 원지에 이어 조성 연대, 규모, 내부 구조 등이 확인된 신라 왕경의 원지 유적으로 가치가 높다. 

 

경주 용강동 원지는 북천의 북편 황성동과 용강동에 걸쳐 위치한 통일 신라 시대 연못 유적이다. 이곳은 초등학교 건립 부지였으나 1998년 영남문화재연궁원에서 연못의 일부와 호안(강이나 바다의 기슭이나 둑 따위를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이나 장치) 석축, 인공 섬, 교각 시설, 도로 등을 확인했다.

 

도로와 연못의 호안이 같은 곡선을 그리고 있어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남쪽에 물이 들어오는 곳이 있고 남쪽 호안에 물받이 시설을 두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북쪽과 서북쪽 호안에 물이 흘러 나가는 곳이 잇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남쪽 인공 섬과 건물 터 사이에 지붕을 덮고 나무로 다리를 만든 누교(樓橋)의 흔적이 있다. 주변에서 연화문 수막새, 용무늬 암막새, 귀면와(鬼面瓦) 같은 여러 종류의 기와 200여 점과 연못 바닥에서 인화문 토기 사발과 병 조각이 출토됐다.

 

이곳에 있던 연못은 물이 개울처럼 굴곡을 이루면서 흐르는 곡수지(曲水池)로 통일 신라 시대 원지의 독특한 양식이다. 주변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아 원지의 조성 시기는 8세기경으로 추정된다.

 

특히 ‘구황동 원지 유적 정비사업’은 2020년 ‘신라왕경 특별법 시행령’이 제정되면서 사업이 급물살을 탔으며 그 빛을 발휘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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