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기고 > 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칼럼] 그건 네 생각이고 혹은 수분이 필요한 거죠
전정주 법포럼경북로스쿨 교수
 
드림저널 기사입력  2018/05/14 [17:09]
▲     © 드림저널


[드림저널] 일요일이면 나는 교회를 간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리스도인인 것은 아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교회를 다니는데 일요일이면 보호자로 함께 가는 것이다.


때로는 대중 교통을 이용한다. 청담역 내려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은 다른 때와는 달리 한산한 모습이다. 버스를 잘못 탔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고 하니 교회 방향으로 가는 버스라면 늘 그랬듯이 이 시각에는 분명히 앉을 자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잘못 탄 것인가?


용기를 내고서 물었다. "기사님 ! 이거 00고등학교 정문 갑니까 ?" 답이 없다.
내 목소리가 작아서 그런가 하면서 다시 물었다. 성량을 늘려서 게다가 목소리를 가다듬어서
"기사님 ! 이거 00고등학교 정문 갑니까?"


이 때 내 앞 자리 그리고 옆의 앞 자리에 있던 승객들의 시선이 거의 약속이라도 한 듯 나를 향하고 있었다. 입술은 모두 굳게 다문 채 말이다.


물론 이번에도 기사님의 대답은 없다. 아 그래도 차 소음 때문에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보다하면서 다시 성량을 더 풍부하게 하고서는 물었다.


"기사님 ! 이거 00고등학교 정문 갑니까? 그때였다. "아까 말했잖아요. 간다고"라는 드디어 기사님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진작 듣기를 잘 해야 했는데 그러면서 아 ‘내가 차를 제대로 타긴 탔구나’라는 생각에 불안은 사라졌다.


몇 정거장을 지나 00고 정문 정거장에서 차는 멈추고 나는 내렸다.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1명만 남긴 채 차에 있던 10명의 사람들이 모두 다 내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 번 묻는 동안 한 번쯤은 혹은 한 명 정도는 답 없는 버스기사 대신 답을 할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네 가요"라고 말이다. 00고 정문을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상황에서 승객 중 누군가와 내가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는 입을 열었을까? 주제넘게 남 일에 관심 가진다는 핀잔을 들을 지라도 말이다. 그러면서 가는 방향이 같은 사람들이라면 더욱 나의 물음에 한 마디에서 더 나아가 환하게 웃는 표정까지 하고서는 두 마디도 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과외의 상상도 해 보았다.


책에서 말하는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지만 남에게 도움도 주지 않는다는 그 서구의 한 행동양식이 이런 모습일까? 아니라면 삶이 고단하여 의당 그러해야 할 그것을 잠시 놓고 있는 걸까?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5월의 화초들이 반짝이고 있다. 한여름이 오면  생기 도는 저 꽃들도 고개를 늘어뜨린 채 숨을 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오뉴월 뙤약볕에 늘어진 화초 이파리는 해가 지기 전에는 이파리를 세우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도 온 몸을 물로 적셔 주기 전에는 다시 붙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늘어진 채라도 늘 갈 수 있다면 모를 일이다. 갈라진 채라도 늘 거기 서 있을 수 있다면 모를 일이다.

언젠가부터 마른 채 우리는 사람들 속에 서 있었다.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 줄 수분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것도 지금 말이다.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공감
기사입력: 2018/05/14 [17:09]  최종편집: ⓒ 드림저널
 
광고
광고
1/7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