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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베풀고 봉사하는 그룹, 수유리 광복군 묘소 찾아

g"조국 위해 몸바친 무후선열, 당신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김영호 기자 | 기사입력 2018/02/17 [15:20]

나누고 베풀고 봉사하는 그룹, 수유리 광복군 묘소 찾아

g"조국 위해 몸바친 무후선열, 당신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김영호 기자 | 입력 : 2018/02/17 [15:20]
▲     © 드림저널


[드림저널] 나누고 베풀고 봉사하는 그룹 한옥순 회장은 17일 무후선열들이 모셔진 합동 묘소를 찾아 합동 차례를 지냈다.


 '무후선열'이란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했지만 후손이 없거나 유해마저 찾을 수 없는 선열을 뜻하는 말이다.


현충원에서는 무후선열제단을 만들어 후손이 없는 독립운동가 133명의 위패을 모시고 있다. 그러나 후손이 있는 다른 순국선열들의 묘역보다 찾아오는 후손이 적은 서울시 강북구 수유리 북한산 그늘에 조촐히 무후 광복군 17위를 모시고 있다.


이날 시민단체의 주관하고 후원해 한국정치평론가협회 전대열 회장, 독도칙령기념사업국민운동연합 조대용 대표, 글로벌에코넷 김선홍 상임회장, 친환경건설추진국민운동본부 이보영 상임대표, 삼일정신선양회 회장 오의교 천지인산악회 신은선 회장들과 합동차례를 지냈다. 


광복군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만주 벌판을 뛰어다녔던 분들이 광복 직전에 일본군과의 교전 끝에 전사했다. 동지들이 있어 유골은 수습됐지만 해방된 조국으로 쓸쓸히 귀국해야만 했다. 동지들의 가슴에 안겨 차디찬 백골이 되어 그리운 조국을 찾았건만 무후(無後) 선열로 남았다.


한옥순 회장은 "당연히 국립묘지에 안장되어야 할 분들이지만 어찌된 셈인지 18위에 대해서는 광복군동지회에서 합동묘소를 북한산 수유리에 조성하게 된다. 1967년에 모셨던 합동묘소를 1985년이 되어서야 국가보훈처에서 단장하기에 이르렀다"면서 "1940년부터 1945년 사이에 순국한 분들로 만주 태항산 등 치열했던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숨졌다. 그 중에서 김천성 선생은 후손이 나타나 국립묘지로 이장했고 나머지 17위만 남아있다. 비록 가족조차 남기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만큼 국가에서 적극 나서 명예를 찾아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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